성명 : 박창호

성별 : 남

나이 : 당시 만 7세

 창호는 90년 2월 생으로서 저를 만난 97년 4월이면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나이인데도 그의 어머니에 의해 2년 째 입학이 보류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대하고 보니 창호는 의외로 똑똑한 어린이였습니다. 그는 신속하고도 정확하게 청각검사에 임함으로서 그의 오른쪽 귀 청각을 검사하는 데에 5분도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청각검사 내내 "왜 창호 어머니는 이렇게 영리한 어린이를 학교에 입학시키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오른쪽 귀에서는 산만함의 원인이 되는 청각(2000 헤르츠에의 민감함)이 발견되기는 했으나 학교 입학을 2년씩이나 보류시켜야 할만큼 심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왼쪽 귀의 청각검사를 시작하자 창호는 완전히 다른 어린이로 변했습니다. 청각검사기의 소리를 아무리 높여도 계속 "안 들려요"를 반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청각검사에 싫증을 느껴서 나타내는 반응으로 생각한 저는 창호를 달래도 보고 야단을 쳐보기도 했으나 그의 태도에는 변화가 없었습니다.

 결국 왼쪽 귀 청각검사를 포기한 저는 그의 어머니 동의하에 산만함의 원인을 제거하는 데에 AIT의 초점을 맞추기로 하였습니다.

 그 날 밤 청각검사 그래프들을 정리하던 저는 왼쪽 귀가 검사되지 않은 채 마무리된 창호의 그래프 용지를 바라보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혹시 창호의 왼쪽 귀가 전혀 들리지 않는 것 아닐까?'

 다음 날 창호에게 다시 청각검사 헤드폰을 씌운 저는 검사기의 소리를 50 데시벨로 고정시킨 후 검사기의 소리를 오른쪽 귀와 왼쪽 귀로 번갈아 내 보내며 창호의 반응을 살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창호는 검사기 스위치 작동이 전혀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주파수에 관계없이 오른쪽 헤드폰으로 소리가 나올 때에는 들려요, 왼쪽 헤드폰으로 소리가 나올 때에는 안 들려요 하고 정확히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왼쪽 귀 청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확인한 저는 이번에는 소리가 왼쪽 헤드폰으로만 나오게끔 검사기 레버를 고정시킨 후 소리 크기를 100 데시벨까지 올려보았으나 창호의 반응은 여전했습니다.

 저의 권유로 창호 어머니는 그 날 즉시 창호의 치료(소아정신과)를 위해 오랫동안 다녔던 한 대학병원의 이비인후과에 정밀검사를 신청했으며 바로 그 다음날 행해진 검사에서 창호의 왼쪽 귀는 신경이 죽어있어서 전혀 듣지 못한다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지난 7년간 창호가 보여왔던 종잡을 수 없던 행동의 원인이 밝혀지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즉, 창호는 오른쪽 귀는 잘 들리고 왼쪽 귀는 전혀 들리지 않음으로서 상대방이 어느 방향에서 말을 하느냐에 따라 반응이 전혀 달랐던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선생님이나 엄마가 자신의 오른쪽에서 말을 하면 바로 알아듣고 반응을 했지만 왼쪽에서 말을 하면 잘 알아듣지 못함으로서 딴청을 부리는 듯한 행동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창호의 이러한 특성을 알 리가 없던 주변 사람들은 창호의 변덕스러운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AIT 종료 후의 청각검사에서 창호의 오른쪽 귀는 정상화되었으나 그의 왼쪽 귀 청력이 살아나지는 않았음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창호 어머니는 지난 7년간 아무도 지적해 주지 않았던 사실(창호의 왼쪽 귀가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을 확인한 자체를 큰 소득으로 여겼습니다.

 앞으로 창호는 오른쪽 귀로 소리를 듣게끔 신경을 써 주기만 하면 큰 발전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다음 해에 학교에 입학한 창호는 선생님의 배려로 왼쪽 귀는 창가를 향하고 오른쪽 귀로는 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자리 배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창호를 위한 자리 배치는 앞으로도 영원히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2000년 현재 초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창호는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